삶의 오솔길을 걸으며.. / 이정하
사람에겐 누구나 홀로 있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낙엽 밟는 소리가 바스락 거리는
외가닥 오솔길을 홀로 걷고 싶기도 할 때가 있고
혼자서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명상에 잠기고 싶은 때도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서 인생은 달리기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멈춰 서서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결코 중단하거나 포기가 아니라 앞으로 보다 가치롭게 나아갈 길에 대비한 자기 성찰일 것입니다
삶의 오솔길을 걸으며 나는 느낍니다
마른 가지에서 연분홍빛 꿈이 움트던 지난 봄 그리고 또 여름에는 살진 가을 열매를 맺기 위해
내리쬐는 불볕도 마다 않고 헌신적으로 받아 내던 잎새의 수고로움
아아 그러한 삶의 과정이 있었기에 가을이면 온갖 초목들은 어김없이 삶의 결실들을 거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너는 과연 어떤 수고로움으로 어떤 결실을 맺었는가
자기의 모든 것을 태워 열매를 맺는 단풍잎처럼 과연 너는 너의 열매를 맺기 위해 땀과 눈물을 쏟았다고 떳떳이 자부할 수 있는가
그렇게 물어 볼 때마다 나는 비로소 초목들보다 성실치 못했던 내 모습에 낭패해 하며
가을을 맞는 내 삶의 길목에서 부끄럽고 또 부끄럽습니다
기다림은 보이지 않는다 / 서정윤
기다린다. 죽음을 위해 손 내밀지 않으며 목숨을 지키려고 애걸하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추수가 끝난 들판에는 눈이 내릴 것을 알고 기다리며 설익은 나를 흔드는 바람에 버티고 섰다.
그래 아직도 기다린다. 이미 정해진 인연의 '그'라면 햇살 따가운 들판에서 나를 추스르며 견딜 수 있고 새들이 유혹에도 초연할 수 있다.
아직 나를 찾지 못한 그와 연결된 가느다란 끈을 돌아보며 순간순간 다가오는 절망조차 아름답게 색칠을 한다.
그리움은 늘 그대를 향해 달려가고 내 기다림의 가을은 보이지 않는다.

그대에게 /안도현
괴로움으로 하여 그대는 울지 말라 마음이 괴로운 사람은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니 아무도 곁에 없는 겨울 홀로 춥다고 떨지 말라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리는 세상 속으로 언젠가 한번은 가리라 했던 마침내 한번은 가고야 말 길을 우리 같이 가자
모든 첫 만남은 설레임보다 두려움이 커서 그대의 귓불은 빨갛게 달아오르겠지만 떠난 다음에는 뒤를 돌아보지 말 일이다
걸어온 길보다 걸어갈 길이 더 많은 우리가 스스로 등불을 켜 들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있어 이 겨울 한 귀퉁이를 밝히려 하겠는가
가다 보면 어둠도 오고 그대와 나 그때 쓰러질 듯 피곤해지면 우리가 세상 속을 흩날리며 서로서로 어깨 끼고 내려오는 저 수많은 눈발 중의 하나인 것을 생각하자
부끄러운 것은 가려주고 더러운 것은 덮어주며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찬란한 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우리
가난하기 때문에 마음이 따뜻한 두 사람이 되자 괴로움으로 하여 울지 않는 사랑이 되자

Reodor`s Ballade 外(하모니카연주곡) - Sigmund Gro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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