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ly Poem

류시화님의 시( 안개속에 숨다 외)

바닷가 나그네 2016. 5. 9. 09:36

그림....반 고흐의 꽃의 모든것

 

글....류시화님의 시

 





안개 속에 숨다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 감을 두려워한다
안개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
안개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도 여럿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없는 것
시간이 가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
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에 숨는 것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시를 쓴다는 것이
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
내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새에 대해
나는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이별법

사랑이 오실때의 그 마음보다 더한 정성으로

한 사람을 떠나보냅니다

비록 우리 사랑이 녹아내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각자의 길을 떠난다 해도

그래도 한때 행복했던 그 기억만은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고 싶습니다

내 인생에 다시 없을 이 사랑

그대가 주었던 슬픔은 모두 잊고

추억의 상자에서 꺼내어

아름다웠노라, 지극히도 아름다웠노라

회상할 수 있는 사랑이고 싶습니다

우리 사랑이 이별로 남게 되어

지금은 견디기 힘든 아픔뿐일지라도

사랑이 오실 때의 그 마음보다 더한 정성으로

그대를 떠나보냅니다

헤어지는 지금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아름다운 미소로....




 
살면서 가장 외로운 날
 
살면서 가장 외로운 날

네가 나에게 왔다.
잠긴 마음의 빗장을 열고

내 영혼의 숨결에

수 놓은 너의 혼...

나는 너로 인해 새로워지고

너로 인해 행복했다.

그리고 나 살아있는 동안

너로 인해 행복 할 것이다.




길 위에서의 생각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물안개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사랑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안개처럼
몇 겁의 인연이라는 것도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

여기에 둥근 기둥이 있어 아무도 그것을 둘러가지 못하리라
그리고 여기에 흙 위에 솟아나온 뿌리가 있어
그것은 방향 없는 눈
아무것도 아닌 것

발에 채인다 여기
모든 흐름을 멈추게 하는 것
빛을 갉아먹는 황금색
벌레들
아무것도 아닌 것들

새삼 사랑을 공개할 필요는
없으리라 눈 위에 눈 위의 감시자들에게 새삼
나의 애인을 들추어 낼 까닭은 없다
여기
하늘에서는 조용히 구름이 날고 이미
이전에 왔던 이가 또 소리친다
이제 곧 종말이 오리라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
우리는 우리가 온 곳으로 되돌아가는 도중에 있음을
안다
눈 속의 감자들, 감자의 죽은
눈들

우리는 소리 없이, 줄지어
검은 나무들 아래로 지나간다
안개, 기둥들,
들리지 않는 소리들
한때 눈 속에 파묻혀 있던
것들, 눈을 아프게 하는 것들

여기에 멈추지 않는 흐름이 있어 우리와 함께
지나간다
소리지른다, 언제나 들리는
소리들
여기에 우리가 서 있어 아무도 우리를 구속하지 못하리라
그리고 여기에 찬란한 기둥들이 서 있어 아무것도
우리의 찬양을 받지 못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




소금별


소금별에 사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릴 수 없네

눈물을 흘리면

소금 별이 녹아 버리기 때문

소금별 사람들은

눈물을 감추려고 자꾸만

눈을 깜박이네

소금 별이 더 많이 반짝이는 건
그 때문이지









속눈썹

너의 긴 숙눈썹이 되고 싶어

그 눈으로 너와 함께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

네가 눈물 흘릴 때

가장 먼저 젖고

그리움으로 한숨지울 때

그 그리움으로 떨고 싶어

언제나 너와 함께

아침을 열고 밤을 닫고 싶어

삶에 지쳤을 때는

너의 눈을 버리고 싶어

그리고 너와 함께

흙으로 돌아가고 싶어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


넌 알겠지
바닷게가 그 딱딱한 껍질 속에
감춰 놓은 고독을
모래사장에 흰 장갑을 벗어 놓는
갈매기들의 무한 허무를
넌 알겠지
시간이 시계의 태엽을 녹슬게 하고
꿈이 인간의 머리카락을 희게 만든다는 것을

내 마음은 바다와도 같이
그렇게 쉴새없이 너에게로 갔다가
다시 뒷걸음질친다
생의 두려움을 입에 문 한 마리 바닷게처럼

나는 너를 내게 달라고
물 속의 물풀처럼 졸라댄다
내 마음은 왜
일요일 오후에
모래사장에서 생을 관찰하고 있는 물새처럼
그렇게 먼 발치서 너를 바라보지 못할까

넌 알겠지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을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는
무한 고독을
넌 알겠지
그냥 계속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이라는 것을






입술 속의 새

내 입술 속의 새는 너의 입맞춤으로
숨막혀 죽기를 원한다

내가 찾는 것은
너의 입술
그 입술 속의 새
길고 긴 입맞춤으로 숨 막혀 죽는 새
나는 슬픔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너를 껴안는다
내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삶은 다만 그림자
실낱 같은 여름 태양 아래 어른거리는
하나의 환영
그리고 얼마큼의 몸짓
그것이 전부
나는 고통 없는 세계를 꿈꾸진 않았다
다만 더 이상 상처받는 일이 없기를

내가 찾는 것은 너의 입술
단 한번의 입맞춤으로
입술 속에서
날개를 파닥이며 숨 막혀 죽는 새
밤이면 나는 너를 껴안고
잠이 든다 나 자신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온 몸으로 너를 껴안고
내 모든 걸 잊기 위해







들풀

들풀처럼 살라
마음 가득 바람이 부는
무한 허공의 세상
맨 몸으로 눕고
맨 몸으로 일어서라
함께 있되 홀로 존재하라
과거를 기억하지 말고
미래를 갈망하지 말고
오직 현재에 머물라
언제나 빈 마음으로 남으라
슬픔은 슬픔대로 오게 하고
기쁨은 기쁨대로 가게 하라
그리고는 침묵하라
다만 무언의 언어로
노래부르라
언제나 들풀처럼
무소유한 영혼으로 남으라



 

 

                 
                  2046 Main Theme (With Percussion)

   

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