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나희덕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내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가락으로 문질러버린 일이 있다.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제 길 위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치며 달아나버렸다.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서리고 있다.
살아 있어야 할 이유... 나희덕
가슴의 피를 조금씩 식게 하고
차가운 손으로 제 가슴을 문질러
온갖 열망과 푸른 고집들 가라앉히며
단 한 순간 타오르다 사라지는 이여
스스로 떠난다는 것이
저리도 눈부시고 환한 일이라고
땅에 뒹굴면서도 말하는 이여
한번은 제 슬픔의 무게에 물들고
붉은 석양에 다시 물들며
저물어가는 그대, 그러나 나는
저물고 싶지를 않습니다.
모든 것이 떨어져내리는 시절이라 하지만
푸르죽죽한 빛으로 오그라들면서
이렇게 떨면서라도
내 안의 물기 내어줄 수 없습니다.
눅눅한 유월의 독기를 견디며 피어나던
그 여름 때늦은 진달래처럼
가슴 시리게 감미로운 음악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봉이. 원글보기
메모 :
'Lovely Poem'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갈대...천상병,신경림 (0) | 2012.10.23 |
---|---|
[스크랩] 한세상 사는 것 ...이외수 (0) | 2012.10.10 |
[스크랩] 가을 엽서...안도현 (0) | 2012.09.06 |
[스크랩] 달 ...김용택 (0) | 2012.09.06 |
[스크랩] 저무는 날에...김남조 (0) | 2012.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