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 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가랴 가기로 작정하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나를 버리는 연습 /나연서
가끔씩 나를 버리려 간다 가능한 한 멀리 간다
가능하면 좀 더 밝은 곳으로 간다
될 수 있으면 좀 더 높은 곳으로 가능하다면 가장 깨끗한 곳으로
그 곳에 가서 나는 나의 어두운 성격과 나의 낮은 희망과
나의 더러운 생각들을 모두 다 버리고 온다
될 수 있으면 가장 먼곳에 그리고 가능하면
다시 되돌아 오지 못하게 그렇게 버리고 온다
가끔씩 나를 버리는 일을 통해서 난 새롭게 나로 탄생한다
세상이 알을 깨고 나에게 온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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