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ly Poem

문정희* 화살노래*

바닷가 나그네 2006. 11. 28. 07:33
문정희의 시 세편, 화살노래 外

 

 

 

 

 

 

 

 

 

화살 노래

 

            

이 말을 할 때면 언제나
조금 울게 된다
너는 이제 물보다도 불보다도
기실은 돈보다도 더 많이
말(言)을 사용하며 살게 되리라
그러므로 말을 많이 모아야 한다
그리고 잘 쓰고 가야 한다


하지만 말은 칼에 비유하지 않고
화살에 비유한단다
한 번 쓰고 나면 어딘가에 박혀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날카롭고 무성한 화살숲 속에
살아있는 생명, 심장 한가운데 박혀
오소소 퍼져가는 독 혹은 불꽃
새 경전(經傳)의 첫 장처럼
새 말로 시작하는 사랑을 보면
목젖을 떨며 조금 울게 된다


너는 이제 물보다도 불보다도
돈보다도 더 많이
말을 사용하다 가리라
말이 제일 큰 재산이니까
이 말을 할 때면 정말
조금 울게 된다.

 

 

 


돌아가는 길


다가서지 마라
눈과 코는 벌써 돌아가고
마지막 흔적만 남은 석불 한 분
지금 막 완성을 꾀하고 있다
부처를 버리고
다시 돌이 되고 있다
어느 인연의 시간이
눈과 코를 새긴 후
여기는 천 년 인각사 뜨락
부처의 감옥은 깊고 성스러웠다
다시 한 송이 돌로 돌아가는
자연 앞에
시간은 아무 데도 없다
부질없이 두 손 모으지 마라
완성이라는 말도
다만 저 멀리 비켜서거라

 

 

 

 

  

   동행
 


     어디로 나가야 길이 있을까 
     그가 운전하는 옆자리에 앉아 
     우회전과 좌회전을 하며 한나절을 헤맨다. 
     사방은 지금 공사 중 
     내장을 벌컥 드러낸 채 뒤집혀 있거나 
     천길 함부로 깎이운 수렁뿐이다. 
     드디어 뒷기어를 넣고 곡예를 해본다. 
     건너편 강변도로엔 미끈한 차들이 
     속력을 다해 달리고 있다. 
     진땀을 흘리며 끙끙거리는 
     그의 옆모습을 본다. 
     지금 내가 잘못 가고 있는 것이 
     제발 자동차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울컥 슬픔과 분노가 치솟는다 
     나는 문을 열고 차에서 뛰어내린다. 
     막다른 길에 세워놓은 
     ‘길없음’표지를 돌연히 치운다. 
     순간 수상한 날개가 부스스 솟는다. 
     이미 해는 기울기 시작했지만 
     그의 차에 다시 탈까 말까 망설였다. 
     그가 저만치서 미등을 켰다. 
     나의 중년은 그날 거기에서 
     그렇게 잠시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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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정희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1975년 현대문학상 수상
       시집 : 꽃숨(1965), 문정희 시집(1973),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1984), 아우내의 새(1986),

       그리운 나의 집, 찔레(1987), 하늘보다 먼 곳에 메인 그네(1988),

       제 몸 속에 살고 있는 새를 꺼내 주세요.(1990)




 


Claude Choe // Blue Aut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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