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깨어져서 많은 물방울이 된다. 물이 깨어져서 많은 자식이 된다. 물방울은 작지만 많은 자리가 넘치게 차고 色이 온몸에 번진다. 자식은 부모보다 빛나고 아름답다. 물의 아버지가 깨어지지 않으면 빛나는 것은 태어나지 않는다. 물방울이 낮은 곳에 모이면 아버지가 된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는 언제나 제일 낮다. 물의 몸이 움직이는 저 깊은 속, 나이 들어가는 물빛의 말이 한마디 한마디 서늘하게 다가온다.
마종기
꽃의 이유
꽃이 피는 이유를 전에는 몰랐다. 꽃이 필 적마다 꽃나무 전체가 작게 떠는 것도 몰랐다.
꽃이 지는 이유도 전에는 몰랐다. 꽃이 질 적마다 나무 주위에는 잠에서 깨어나는 물 젖은 바람 소리.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누가 물어 보면 어쩔까.
마종기
담쟁이꽃
내가 그대를 죄 속에서 만나고 죄 속으로 이제 돌아가니 아무리 말이 없어도 꽃은 깊은 고통속에서 피어난다.
죄없는 땅이 어느 천지에 있던가 죽은 목숨이 몸서리치며 털어버린 핏줄의 모든 값이 산불이 되어 내 몸이 어지럽고 따뜻하구나.
따뜻하구나, 보지도 못하는 그대의 눈. 누가 언제 나는 살고 싶다며 새 가지에 새순을 펼쳐내던가. 무진한 꽃 만들어 장식하던가 또 몸풀듯 꽃잎 다 날리고 헐벗은 몸으로 작은 열매를 키우던가.
누구에겐가 밀려가며 사는 것도 눈물겨운 우리의 내력이다. 나와 그대의 숨어있는 뒷일도 꽃잎 타고 가는 저 생애의 내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