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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놓치는 두가지 병

바닷가 나그네 2007. 3. 24. 10:11

1.

우리가 시간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다.

‘시간은 돈이다’고 외치는 세태에,

너도 나도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빨리 빨리’를 외치는 시절에

시간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시간을 놓치고 산다.


무엇보다 시간은 균질적인 것이 아니다.

아침의 한 시간과

저녁의 한 시간이 같은 것이 아니며

오늘의 한 시간이

내일의 한 시간과 같은 것이 아니다.

시간이란 것은 오늘 저축했다가

내일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착각이다.


 


 우리가 말 한마디를 잘 못해서

오해가 생길 경우,

그 시간에 바로 사과를 하고

잘못을 바로 잡는다면 오해는 끝난다.

더 이상의 파장이 없다.

그러나 멈칫 거리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 말 한마디가 다른 일에도 파장이 간다.

인간관계 자체가 꼬이고 소원해지고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지점으로까지 가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이미 말 한마디는

말 한마디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렇게 된 다음에야

몇 시간을 붙잡고 사과를 한들 소용이 없다.

시간을 놓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시간의 문제는,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때(=時)를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일의 승패, 인생의 승패를 좌우한다.


2.

우리가 7~80년을 살지만 실제 사는 것은

현재라는 찰간에 살고 있을 뿐이다.

과거는 지나가서 없는 시간이고

미래는 아직 오직 않아서 없는 시간이다.

그래서 과거에 살 수 없고 미래에 살 수 없고

현재의 찰라에서만 살고 있을 뿐이다.


시간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

현재를 현재로 직시하고 현재 이 자리,

이 시간에 해야 할 일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에 살면서도

현재를 사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서 시간을 놓친다.

시간을 놓치는 두 가지 병이 있다.

하나는 과거에 머물고자 하는 병이고

또 다른 하나는 미래로 떠도는 병이다.


전자의 경우,

현재를 현재로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 경험을 통해서

 현재를 바라 보는 것이다.

가령 ‘너는 이런 놈이지’ 라는

선입관을 갖고 오늘의

그 사람을 보는 것이 그런 경우이다.

또 ‘어제 이런 방법으로 득을 보았으니까

오늘도 같은 방법으로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런 것이다.

이미 시간을 흘러가고 세상은 바뀌었는데

자신의 과거에 머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말하자면 각주구검(刻舟求劍)의

세월을 보내는 것이 그런 류이다.

사실 우리는 이런 함정에 빠져 있다.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를 현재로 마주하는 사람,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을 보기는 참 어렵다.

현재를 현재로 마주하는

사람을 두고 때를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

옛말로는 천시(天時)를 안다고 한다.


3.

또 하나의 병, 미래로 떠도는 병이 있다.


가령 야구선수가 타석에 섰을 때,

투수가 던지는 공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그 선수는 훌륭한 선수다.

시간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타석에 서서,

이번에 홈런을 못 치면 타율이 2할대로 떨어지고

 이번에 한방 치면 일거에 인기가 올라가고

 몸값이 오를 것이라고 그런 생각을 한다면,

아직 투수의 공은 도착하지 않았는데

공이 담장으로 넘어가는 상상을 한다면,

그렇게 미래로 생각이 떠돈다면

배트에 공을 제대로 맞힐 수가 없다.

시간을 놓치기 때문이다.

몸이 굳어지는 이유,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시간을 놓치기 때문이다.

현재의 시간이 죽어가면서

그 죽어가는 시간의 중압감이

몸올 굳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일상에서도 그런 일은 자주 있다.

가령 입시수험생들이나 취업준비생들이

공부에 열중할 때는 부담감이 없다.

러나 이번 시험에 또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부모님들이 얼마나 실망하실까?

그렇게 미래의 결과를 미리 놓고

생각이 떠돌면 압박감은 커진다.

책을 보고 있어야 할 현재의 시간을 놓치면서

현재의 시간은 죽어가고

죽어가는 시간의 중압감에 의해서 스트레스는 가중된다.


또 로토 복권을 사는 사람들도 그렇다.

이미 머릿속에는 당첨의 순간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그 다음에 그 돈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며

어떻게 해외로 빠져 나갈까라는

 가상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전개된다.

이 또한 시간을 놓치고 사는

사람들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가히 망상의 수준이다.

이런 류의 망상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 있다.


이렇듯 우리는 과거에 붙잡히고

미래로 떠돌면서 시간을 놓치고 산다.

정말 시간을 놓치지 않는

사람들은 집중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과거에도 한 눈 팔지 않고

미래에도 한 눈 팔지 않고

오로지 찰라간의 순간에 몰입한다.

찰나에 몸과 마음을 다 던져 넣을 수 있는 사람들은,

과거에 집착하지도 않고

미래를 탐욕의 대상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현재의 찰라에 집중할 수 있다.


/배영순(영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