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ly Poem

가을을 닮은 시

바닷가 나그네 2006. 10. 19. 18:17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치고 싶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잎보다 먼저 꽃이 만발하는 목련처럼
사랑보다 먼저 아픔을 알게 했던,
현실이 갈라놓은 선 이쪽 저쪽에서
들킬세라 서둘러 자리를 비켜야 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까이서 보고 싶었고
가까이서 느끼고 싶었지만

    애당초 가까이 가지도 못했기에 잡을 수도 없었던,
    외려 한 걸음 더 떨어져서 지켜보아야 했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음악을 듣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무슨 일을 하든간에 맨 먼저 생각나는 사람,
    눈을 감을수록 더욱 선명한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기어이 접어두고
    가슴 저리게 환히 웃던, 잊을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빛은 그게 아니었던
    너무도 긴 그림자에 쓸쓸히 무너지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덮어두고 지워야 할 일이 많겠지만
    내가 지칠 때마다 끊임없이 추억하다
    숨을 거두기 전까지는 마지막이란 말을
    절대로 입에 담고 싶지 않았던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부르다 부르다 끝내 눈물 떨구고야 말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정하

 

 

 

 

살아가는 일이 쓸쓸해질 때..


어느 날,
마음 한가득 바람이 일어
낙엽 지는 거리로 나서면
벌거벗은 채 온 몸을 던져
습한 대지 위에 드러눕는
나뭇잎 하나를 만날 수 있다.

이따금,
살아가는 일이 쓸쓸해질 때나
누군가와 마음을 터 놓고
한동안 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땅 위에 처연하게 나뒹구는 나뭇잎을 보며
고독한 가슴을 쓸어보리라.

빛 바랜 낙엽은 말이 없어도
서로를 부둥켜 안고
가만 가만히
귓속말로 유전을 전해 주는 걸
마음으로 깨달아 알 수 있으리라.

한 생을 살다 문드러진 몸
그대로 누워 흙으로 돌아가는 날
나뭇잎은 삶을 이루었다 말하니..

이따금,
살아가는 일이 쓸쓸해질 때
낙엽 지는 거리로 나서면
다음 세대를 위해 빈자리 마련하는
나뭇잎 하나를 만날 수 있다. 

 

 

유인숙

 

 

 

 

이쯤에서 다시 만나게 하소서..


그대에게 가는 길이 멀고 멀어
늘 내 발은 부르터 있기 일쑤였네.
한시라도 내 눈과 귀가
그대 향해 열려 있지 않은 적 없었으니
이쯤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하소서..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는 사람.
생각지 않으려 애쓰면 더욱 생각나는 사람.
그 흔한 약속 하나 없이 우린 헤어졌지만
여전히 내 가슴에 남아 슬픔으로 저무는 사람.
내가 그대를 보내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그대는 나의 사랑이니
이쯤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하소서.

찬이슬에 젖은 잎새가 더욱 붉듯
우리 사랑도 그처럼 오랜 고난 후에
마알갛게 우러나오는 고운 빛깔이려니,
함께 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로 인한 슬픔과 그리움은
내 인생 전체를 삼키고도 남으니
이쯤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하소서..

 

이정하

 

 

 

 


 

한 사람을 사랑했네..
 
 
삶의 길을 걸어가면서
나는, 내 길보다
자꾸만 다른 길을 기웃거리고 있었네..
 
함께 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로 인한 슬픔과 그리움은
내 인생 전체를 삼키고도 남게 했던 사람.
만났던 날보다 더 시랑했고
사랑했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그리워했던 사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함께 죽어도 좋다 생각한 사람.
세상의 환희와 종말을 동시에
예감케 했던
한 사람을 사랑했네..
 
부르면 슬픔으로 다가올 이름.
내게 가장 큰 희망이었다가
가장 큰 아픔으로 저무는 사람.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기에
붙잡지도 못했고
붙잡지 못했기에 보낼 수도 없었던 사람..
 
이미 끝났다 생각하면서도
길을 가다 우연히라도 마주치고 싶은 사람.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는 날이면
문득 전화를 걸고 싶어지는
한 사람을 사랑했네..
 
떠난 이후에도 차마 지울 수 없는 이름.
내 죽기 전에는 결코 잊지못할
한 사람을 사랑했네..
 
그 흔한 약속도 없이 헤어졌지만
아직도 내안에 남아
뜨거운 노래로 불려지고 있는 사람.
이 땅 위에 함께 숨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사람이여..
나는 당신을 사랑했네.
세상에 태어나 단 한 사람.
당신을 사랑했네..
 
이정하

 

 

 

 

 

침묵에게..
 
내가 행복할 때에도
내가 서러울 때에도
그윽한 눈길로
나를 기다리던 너..

바위처럼
한결같은 네가    
답답하고 지루해서
일부러 외면하고
비켜서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돌아와
네 어깨너머로 보이는
저 하늘이 처음 본 듯
푸르구나.

너의 든든한 팔에 안겨
소금처럼 썩지 않는
한 마디의 말을
찾고 싶다.
언젠가는 네 품에서
영원한 잠을 자고 싶다.
침묵이여..
 
이해인

 

 

 

 

 

소중한 사람..
 
내가 부를 수만 개의 이름 중에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을
부름 하나가 있다면 그건 당신입니다..
 
 내가 그릴 수만 개의 그림 중에
죽는 날까지 고이 간직할 얼굴 하나가
 있다면 그건 당신입니다..
 
내가 만들 수만 개의 추억 중에
두고두고 가슴에 사무치는
 기억 하나가 있다면 그건 당신입니다..
 
내가 담아낼 수만 개의 사랑 중에
 되뇌고 또 되뇌어야 할 입버릇 같은
 정분 하나가 있다면 그건 당신입니다..
 
 내가 찾을 수만 개의 진실 중에
가슴을 치며 소중히 해야 할
고마움 하나가 있다면 그
건 당신뿐입니다..
가장 소중한 사람
당신뿐..
 
이준호님

 

 

 

 

 

 

길 위에서의 생각..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삶에서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함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류시화 님의 시..

 

 

 

 

 

 

 

 

En Aranjuez Con Tu Amor -  Sarah Brightman